이렇게 소설 쓰면 안됩니다.
내 삶에 눌어붙어 있던 가난은 매 끼니처럼 지겹고 익숙했다.
가난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했지만, 저마다들만 알고 있을 지극히 개인적인 형태로 각각 눌어붙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을 나만 가지고 있는 가난으로만 치부해버렸는데, 만나는 이들마다의 말끝에 대롱 매달려 있는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아 이것은 본래 사계절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믿게 되었다. 끼니는 사람이 죽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전쟁이 종식되어도 이어가야하므로 익숙한 것이었지만, 당장 오늘 저녁은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치면 곧이어 지겨워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 끼니는 무언가를 지불하여야만 수저를 든 내 앞에 드러났고, 그 지불은 또다시 나의 가난을 들추어냈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아버지의 손 위의 돈뭉치는 그저 노동의 대가로 치부하기엔 의심스러운 액수였다. 아버지는 협잡꾼이었고, 기둥서방이었으며 늘 누군가에게 약속을 해대는 사기꾼이었다. 그는 만나는 이들마다 자신의 자존감을 추켜세우려 애썼고, 그러기 위해 공허한 인생을 화려하게 덧칠할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그의 텅 빈 삶을 태워냈다. 하지만 거짓과 허위의식은 영롱하기 그지없고 거대하며 탐스러워도, 결국 꺼지는 거품 같은 것이었기에, 그는 늘 추락하여 세상을 저주하고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아버지가 이송 될 때마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새 연인과 마주쳐야 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황망히 교도소 앞에서 아버지의 거짓말만 맹종하는 여자들을. 교도소가 바뀔 때마다 바뀌어 있던 그 여자들을, 어머니는 나와 함께 데려가 뜨거운 국밥국물이라도 같이 먹곤 했다. 뜨거운 국물이 황량했던 위 속을 적시며 잠시나마 혹한의 세상 속에서 벗어 날 때. 어머니는 낡고 건조한 아버지와 자신의 역사를 그 여자들에게 풀어 놓았다. 그래도 끝까지 자신이 탐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어머니에게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국밥을 남기고 간 이는 없었다. 밥이란 그런 것이다.
나의 가난을 들추어 내는 밥이라는 것은, 그저 내 뱃속에서 삭혀져 다시 몸 밖으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 가혹한 세상 속에서 우리를 비참하지만 그나마 움직이게 만들, 이유이기도 했다.
1. 주제, 소재, 테마에 대해서 깊은 생각이나 고민 없이 그냥 무작정 썼다.
2. 문장이 기름지고, 쓸데없는 미사여구들이 길다. (실패한 김훈 짝퉁)
3. 지나치게 사변적이다.
4.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5. 소설에서는 단정적인 철학을 직접적으로 말하면 독자의 반발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6. 틀린 띄어쓰기와 맞춤법, 비문이 많다.
7. 예전에 쓴 글을 무작정 재활용하였다.
#어제 단편소설 하나 끝내고, 쓸 게 없어서 한시간만에 무작정 쓴글